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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기 비젼스쿨을 마치고 – Clara Paik

Clara Paik – 동북부 연합회: 보스톤

난 12살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왔다.

우리 가족에 신앙생활은 장사하는거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엄마가 엘에이에 계시는 사촌언니, 나에게는 사촌이모가 매주 보내 준 카셋테이프에 안에 있는 목사님에 설교 말씀에서 시작 됐다.  난 기억난다!  엄마는 가게 끝나고 집에만 오시면 부얶에서 항상 그 테이프를 뜰어 놓고 들으셨다.  그리고 또 기억난다.  아버지에게 “우리 교회 나가야 돼” 라고 하실때도.  아버지는 “장사 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교회를 나가?”  나의 아버지는 엄마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 주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성경을 두번 통독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

지금 이 비젼스쿨처럼 난 대학생 때 ‘사랑의 불꽃’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예수님을 영접한거 같다.

오늘 폴현 사무총장에 간증처럼 난 어려서부터 rule 잘 지키는 ‘good girl’ 였다.  중고등학교때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주일학교 선생님, 동시통역등등 우리집에서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였다.  나 때문에 이민 와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기뻐 하신다면

한가지 기억나는건 왜 한국이민교회들은 내옆에도 예수 믿지않는사람 투성인데 왜 아프리카 러시아 선교를 하는건지 그 어린나이에 이해가 안 갔다.

그리고 개척교회에서 본인들거 하나도 아끼시면서 교회에 봉사하시는 부모님을 보고 난 참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는 또 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열들을 옆에서 보고 난 교회 일 하지 말아야지가 내 계명이었다.

난 내 Youth Pastor였던 분에 중매로 결혼을 했고 이테까지 아무 탈 없이 아들 딸 낳고 잘 산거 같다.

두가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자면 2010년 2월 24일날 아버지는 하나님품에 안기셨다.  난 아버지를 하나님이 데려 가시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병이 있으셨지만 우리 아버지 같이 인간적으로 휼륭하시고 믿음 좋으시고 주님 사역에 앞장 쓰시는분을 데려 가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한것이다.  난 일찍 결혼을 했지만 남동생이 결혼이 늦어져 그때 조카가 1살이었다.  아버지는 참 조카를 많이 이뻐하셨는데 동건이가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시고 가신게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는 ‘하나님 당신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우리 아버지 같은분을 데려 가실 수 있어요?’ 그 다음 3년 정도를 교회는 갔다 안갔다 했다.  아버지를 보낸후에는 음식을 도데체 소화를 시킬수 없어서 전엔 전혀 입에 대 보지도 않던 술이 반주가 되었다.

내 career는 내가 계획한데로 몇살때 탑에이젼트로 얼만큼을 이루고 회사는 몇살때 하고 다 내 계획데로 움직여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프로젝트 때문에 달라스에 갈 일이 있었다.  달라스에는 고가도로라고하는 길들이 많았는데 렌트카로 그 길을 운전 하는데 떨어질것 같은 공포감에 앞뒤에 차들은 많은데 운전을 할수가 없었다.   그때 난 이건 분명히 스트레스라고 생각 했다.

2019년 초부터 엘에이에 있는 친구 한테 3월에 놀러 가겠다고 보스톤에서 목요일날 출발해서 일요일날 돌아 오는 스케줄로 계획을 짜 놓았었다.  그 친구도 교회를 다니는 친구라서 가끔씩 신앙에 대해서 나누곤 했었다.  엘에이 출발 전주에 그 친구가 카톡으로 KCBMC 비젼스쿨이라는 브로셜을 보내면서 ‘클라라 너 여기 가’ 라고 카톡이 왔다.  난 “CBMC” 이건 또 뭐야”  이단 아니야?

나랑 같이 플로리다에서 자란 유일한 한국친구가 침레교회 목사님 딸 Janet Choi.  목사님 딸로 너무 힘들게 자라 난 목사 사모 안해 하던 나의 친구는 또 목사와 결혼을 했고 그때 머리속에서 스쳐간 생각이 이걸 Janet 한테 보내 면 뭔지 알겠지였다.  남편이 목사면서 신학교 교수다.  그래서 Janet 한테 카톡으로 보냈다.  Janet은 “너 영적으로 힘들어?”  난 “힘들어”  그 브로셜을 본 Janet은 “Kevin Lee 집사님?”  그 비젼스쿨 브로셜에 ‘Kevin Lee 회장님이 Guest Speaker’ 로 사진이 나와 있었다.  Janet 남편은 이광익회장님이 다니시는 교회 뉴송교회 EM 에서 21년간 담임목사였다.  Janet은 이광익집사님이 하시는거면 일단 이단은 아니니 “일단 가” 그리고 기도할께.  그래서 등록을 했다.

비젼스쿨은 금요일 아침 9시에 시작해서 토요일 오후 2시에 끝나는 스케줄이었고 난 보스톤에서 목요일 아침에 출발을 해서 일요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오는 스케줄이었다.  목요일날 엘에이에 도착 했는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회사에 일이 있다고 본인은 금요일날 12시쯤 온다는 거였다.  등록은 했고 돈도 다 냈고 내 성격에 하면 완벽하게 해야 하기에 난 금요날 아침 8:30에 비젼스쿨 장소에 도착했다.  시작은 9시인데 쥐새끼 하나 없었다.  8:45 되니까 스테이지로 사람 하나 둘이 세업하기 시작 하더니 뒤에서 “안녕하세요?  전 메리랜드에서 온 David Han”입니다 하고 누가 와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난 “전 보스톤에서 온 Clara Paik 입니다.  메리랜드면 혹시 융자 하는 Grace Byun 아세요”  David “오 Grace Byun 우리지회 총무데”  Grace 는 우리회사 한국어로 융자를 도와 주는 친구고 나랑은 아시안 부동산 협회에서 만난 10년지기 친구다.  나중에 안 애기지만 한기덕 총부회장님은 Grace에게 물었다고 “여기 보스톤에서 Clara Paik 이라고 와 있는데 누구랴고” 그 때 한기덕부총회장님은 새 지회 창립부를 섬기시고 있어서 보스톤을 놓고 기도 하고 계셨다.

나에게 일은 생명 같았다.  아버지가 다 이루어 놓고 가신 아버지에 레게시를 우리 아이들에게 꼭 다 잘 물려 줘야 한다는 악박감.  난 보통 아침 5시면 회사에 나간다.  가서 사무장이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정리해 놓고 아침 8시에 사무장이 나오면 넘겨 주고 그때부터는 내 file을 정리한다.  내 전화는 24/7 에이젼트들 손님 전화로 울린다.

비젼스쿨에서 “내 일터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든다”는 메세지는 내가 생전에 들어 보지도 못한 이야기지만 일에 미쳐 있는 나에게는 딱 맞는 메세지였다.  난 한번도 내 신앙을 종교로 생각해 본적은 없다.  나에게는 must 였지 그러나 실행을 하지는 않고 살았던거다.  그러니 기쁨도 없고 스트레스에 쫒기는 삶이었었다.  이게 2019년 3월 9일.  내가 제 31기 비젼스쿨을 마친날이고 난 분명히 안다 이날부터 내 인생은 바뀌었다.  “난 이날부터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게 되었다.”

David Han은 나에게 보스톤에 지회를 하라고 했지만 내 맘에 항상 자리잡고 있는 주의 일은 할게 아니야 라는 생각때문에 정중히 거절하고 왔다.

보스톤에 돌아 와 그리 바쁜 월요일만 되면 컴푸터에서 일은 안 되고 오늘 월요만나는 나에게 무슨 메세지를 주실까 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는 월요만나를 8주정도 혼자하고는 David Han에게 전화를 했다.  “저 이 월요만나 누구랑 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요?”  사실 이때까지도 지회를 해애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월요만나가 너무 좋았다.  David Han “마음 맞는 한 사람과 시작 하시면 돼요”  그래서 내 에이젼트 roaster 를 밨다.  그리고 생각한 사람이 내 에이젼트 Janice Lee 선생님이다.  7년동안 나랑 일하시는 Janice Lee선생님에 크리스쳔의 삶은 나에게는 달랐다.  그날 Janice 샘이 오피스에 오셔서 “내가 CBMC 라는걸 만났는데 샘 저랑 월요만나 좀 해요” 라고 물었더니 흥케 대답을 못 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미 Lewis Lee 변호사님(Janice Lee’s husband) 이미 샌디에고로 job이 되어서 이사를 결정했을때다.  이게 우연일까?  Lewis Lee변호사님과 Janice Lee샘은 이사를 갔다가 다시 올해 2월에 보스톤으로 돌아 오셔서 보스톤 준비지회를 잘 하고 계시고 오늘 Janice Lee샘은 제 36기 비젼스쿨을 마쳤다.

이때부터 나의 고난은 시작이었다.  자매 둘과 5월부터 월요만나를 시작 했는데 두번이나 새 맴버가 들어 오려고 하면 못 오게 하는 것이였다.  이게 한번은 6월말이었고 또 한번은 11월 달이었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내가 그 자매 둘한테 분명한 복음을 전할수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그리고 아무리 큰 교회 권사님이라도 봉사 많이 하던 집사님이라도 과연 진정한 복음이 맘에 있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는 와라 안와라는 아니지 않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다 하나님이 나를 휸련시키시기 위한 계획이었지만 그때는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비젼스쿨 제36기를 마친 이강미박사님 애기를 좀 해야겠다.  그 힘든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5년전에 나에게 본인들 살고 있는 집을 샀던 길은석 박사님(이강미박사님 남편)한테 전화가 왔다 이게 아마도 작년 12월 어느날이었을거다.   본인들이 앞으로 investment properties 계속 사야하는데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미 하나를 보았는데 마음에 든다고 오퍼를 당장 쓰자는 것이었다.  나에게 길은석박사님과 이강미 박사님에 대한 기억이 생생했다.  선하고 선하신분들 믿음안에서.  부동산 딜을 해 보면 어떤 삶을 사는지는 한번에 다 안다.  그리고는 댁에 가서 오퍼는 30분 쓰고 CBMC 애기 두시간을 하고 나왔다.  항상 잘 들어 주시는 두분 그 날도 듣고만 계셨다.

올해 1월말 Leadership School 가는데 LAX 에서 박상근 회장님 김형주 전회장님 정세근연합 회장님을 만났다.  난 그때 사실 기분이 시집살이 너무 당하고 친정에 가는 맘이었다.  LA 에서 산호세 가는 비행기에 박상근회장님이 내 옆자리에 앉으셨다.  이게 우연일까?  비행기에 좌석이 몇개인데 . LA 에서 산호세 비행시간은 45분이지만 비행기 시간 이리저리하면 1시간반정도.  난 비행내내 박상근회장님께 하소연을 했다.  그리고는 박상근 회장님이 보스톤행비행기표를 사셨다.  그리고 그게 지금 보스톤 준비지회 8명을 모이게 한 역사적 모임 2월말이다.  박상근 회장님이 오신날!  그 맴버들이 이테까지 같이 모이고 있음.  Leadership School 에서 나에게 주신 메세지는 ‘나를 십자가에 박아야 한다는’  지금 현회장님이신 배현규회장님에 메세지였다.  그날 저녁에 딜땜에 길은석박사님과 통화를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내가 길은석 박사님한테 “길박사님 저 한번만 도와 주세요?”  길박사님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저랑 월요만나 좀 해주세요?”  난 누구한테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자존심과 pride 가 너무나도 센 사람이라서.  그러나 날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의 그리스도를 위해서 뭘 못하겠르랴는 생각이 들었다.

난 확실히 안다.  우리 보스톤 지회는 박상근 회장님이 다녀 가신 2월말부터 자리 잡는게 보였다.  그게 왜인줄 아는가?  박상근회장님이 나에게 말씀 하신게 있다 오시기전에 “기도하면서 갑니다”

우열곡절은 많았지만 한번도 빠지지않고 작년 5월말부터 보스톤준비지회는 월요만나로 만났다.  한번은 아무도 없어 내 제일 친한 성당 다니는 친구보러 내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월요만나를 한적도 있다.  하지만 한번도 skip 한 주가 없다.

너무 월요만나만 하다 보니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싶어 어찌하나 하고 있을때 올해 11월 첫째주에 Janice Lee샘과 Maryland 와 Virginia를 가서 다른 지회는 어떻게하나 배워 오자 하고 다녀왔다.  난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보다 영적인 성숙함이 깊으신 Lewis Lee 변호사님이나 길은석박사님이 보스톤 창립을 하게 되면 회장을 했으면 했다.  난 한 3년간 더 양육 받기를 원했다.  이 방문을 통해 솔직한 표현으로 한참 동생벌 되는 yCBMC Fairfax Andy Kim 회장과 강고은 부회장에 말땜에 쪽팔리고 창피했다.  그리고 그들에 섬기는 행동을 보고 ‘난 아직 멀었구나’

난 할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근데 길은석박사님이 우리 모임에서 하신 말씀중에 하나가 “우리는 항상 잊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건 하나님에 은혜 라는걸”

내가 믿지 않았던건 이민교회, 무슨지회에 창립.  오늘 제 36회 KCBMC 비젼스쿨을 마치고 나를 지난 10개월동안 양육해 주신 저희 보스톤 동역자들과 구체적으로 저희 보스톤지회창립을 계획해 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저희 모든게 당신에 것입니다라고 약속하는 날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서다.

내가 KCBMC 가지에서 붙어 살고 싶은 정확한 이유는 여긴 분명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일이 있을때마다 동역자들의 방문이나 문자들 아주 타임밍이 정확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  나 같이 따지고 나의 주장이 강한 볼것 없는 나를 여기까지 오게 기도해 준 모든 동역자들 감사하고 지금 생각에는 이제 그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에 계획이 기대 된다고 말할수 있다.

나에게 가장 큰 상처였던 나에 아버지는 이제 이 말씀으로 놓아 드리려고 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4;13

그동안 애써주신 나의 진정한 Mentor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Clara Young-Joo P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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